2026년 새해 벽두,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귀멸의 칼날)’이 한국 극장가와 글로벌 시상식에서 극명하게 엇갈린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한국에서는 2025년 연간 박스오피스 정상을 목전에 두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 11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예상치 못한 고배를 마시며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좀비딸’ 턱밑 추격… 韓 박스오피스 대권 눈앞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과 배급사 애니플러스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개봉한 ‘귀멸의 칼날’은 장기 상영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는 관람 열기로 한국 극장가의 흥행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누적 관객 수는 563만 명대를 기록하며 기존 1위인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563만 7천여 명)을 3천여 명 차이로 바짝 추격 중이다. 평일 관객 추이를 고려할 때 이번 주 내 역전이 확실시되며, 사실상 2025년 연간 관객 수 1위 등극을 예고했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이미 왕좌에 올랐다. 누적 매출 약 607억 원을 기록해 경쟁작인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531억 원)과 ‘F1 더 무비’(549억 원)를 모두 제쳤다. 2025년 한국 영화계가 대작 부재로 고심하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마저 주춤했던 빈틈을 타, 탄탄한 팬덤과 일반 관객까지 흡수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특히 화려한 작화와 연출에 힘입어 아이맥스(IMAX), 4DX 등 특별관을 중심으로 한 ‘N차 관람’ 열풍이 흥행을 견인하고 있다.
이로써 ‘귀멸의 칼날’은 2019년 ‘겨울왕국 2’ 이후 6년 만에,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한국 연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게 될 전망이다.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서브컬처가 아닌, 국내 극장 시장을 주도하는 핵심 장르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골든글로브의 이변, 작품성 앞세우고도 ‘K-웨이브’에 무릎
한국에서의 파죽지세와 달리, 미국 시상식 무대에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11일 개최된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귀멸의 칼날’은 수상에 실패했다. 트로피의 주인공은 넷플릭스의 다크호스 ‘K-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였다.
당초 현지 비평가들은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8%를 기록한 ‘귀멸의 칼날’의 우세를 점쳤다. 전 세계 흥행 수익 7억 9,100만 달러(약 1조 원)를 돌파하며 일본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압도적 성과와 작품성, 그리고 화려한 액션 연출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일본 애니메이션 수상 기대감도 높았다.
그러나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확산된 ‘K-웨이브(한류)’의 파급력이 변수였다. 수상작 ‘K-팝 데몬 헌터스’는 비평 점수(93%)에서는 ‘귀멸의 칼날’에 다소 뒤졌으나, 넷플릭스라는 강력한 플랫폼 접근성과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심사위원단의 표심을 잡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중 가장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귀멸의 칼날’조차 시상식 시즌의 ‘다크호스’를 넘어서지는 못한 셈이다.
다가오는 오스카, ‘진입 장벽’ 넘을 수 있을까
골든글로브의 아쉬운 결과는 오는 1월 22일 발표될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후보 지명 전망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 아카데미가 전통적으로 스튜디오 지브리 외의 일본 애니메이션에 인색한 데다, 올해는 경쟁작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화제작 ‘체인소 맨: 레제편’이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연출과 음악, 스토리텔링 면에서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어, 아카데미가 한 해에 두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후보로 올릴지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아카데미가 ‘귀멸의 칼날’ 대신 ‘체인소 맨’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영화의 구조적인 특성 또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경쟁작인 ‘K-팝 데몬 헌터스’는 독립적인 서사를 가진 단독 영화이고, ‘체인소 맨’ 역시 시리즈를 보지 않아도 이해 가능한 구조다. 반면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클라이맥스를 다루는 3부작의 시작점이기에, 전작을 보지 않은 아카데미 투표인단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다. 한국 시장을 평정한 ‘귀멸의 칼날’이 과연 이러한 악조건을 뚫고 오스카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을지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